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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중 정기산행

방장산 정상입니다.

 
 

 

산행기록

○ 일시 : 2012.5.18.(토) 10:00 ~ 15:30

○ 장소 : 장성 고창 방장산

○ 참석 : 11인 (아우야, 청량, 둥굴레, Real Dragon, 마음이 통한친구, 날다람쥐, 잎새공주, 산중애)

○ 높이 : 방장산 743m / 누적높이 700m추정

○ 거리 : 10.0km

○ 시간 : 5.5시간(휴식시간 1.0시간) / 이동시간 1시간

○ 배지 : 쓰리봉, 방장산, 방문산, 벽오봉

○ 코스 : 장성갈재 - 515봉 - 쓰리봉(734봉) - 675봉 - 695봉 - 725봉(봉수대) - 방장산(743봉) - 624봉 - 625봉

             - 벽오봉 - 별봉 572봉 - 양고살재 - 방장산자연휴양림

○ 특이사항 : 영산기맥 산줄기산행 조망산행

 

 

< 방장산 >

방장산은 중국 삼신산의 하나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렀다. 호남 지역에서는 방장산, 무등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다. 전라북도는 일봉래로 변산을, 이방장으로 방장산을, 삼영주로 두승산을 삼신산으로 하였다.

예전에는 이 산을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불렀다. 반등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 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조선 인조 때 청나라에게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 17에는 「반등산곡(半登山曲)」으로 나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사(高麗史)』 권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백제 유민이 부르던 노래 5곡으로 「방등산가(方等山歌)」·「지리산가」·「선운산가」·「정읍사」·「무등산가」 등이 나와 있는데, 그중 「방등산가」은 도적 떼에게 잡힌 여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부르는 노래다. 이곳에 등장하는 방등산과 반등산은 방장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장산 [方丈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방장산 정상표지목

 

산행지도

 

 

장성 갈재에서 한컷

 

장성갈재

삼남대로 갈재 옛길은 고려시대 현종(顯宗)이 나주로 몽진하며 넘은 이래 호남의 대표적인 고갯길로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노령(蘆嶺)‧위령(葦嶺)‧갈령(葛嶺)‧적령(荻嶺) 등으로 표기되었고, 이곳을 지난 문인들의 많은 시문(詩文)이 남아 전한다. 특히 지명의 유래에 대한 다양한 전설과 주변 명승에 관한 기록이 많아 인문학적 가치가 높다.


삼남대로 갈재 옛길에는 역사에 근거한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역터‧원터‧주막터 등의 도로 관련 시설부터, 산성‧석불 등 사적이 전하며, 철도 등의 근현대 유산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울러 갈재, 입암산, 갈애바위 등과 관련된 무형문화요소가 구비전승으로 전하여 문화적 가치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삼남대로 갈재 옛길은 경관적으로도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근대화의 과정속에 고속도로 및 철도가 건설되며 그 기능이 쇠퇴해 버려진 길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돌길과 흙길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다. 아울러 갈재 옛길은 과거 포장도로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의의를 지닌다. 아울러, 주변에는 과거 이곳의 역사를 상징하는 노거수 등이 현전하고 옛길을 따라 다양한 식생구조가 분포하여 생태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성군)

 

 

이고들빼기

이고들빼기는 고들빼기와 잎 모양에서 쉽게 구별되고, 서식처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편이다. 이고들빼기의 잎은 주걱형이고 가장자리에는 가는 톱니(鋸齒)가 있지만, 고들빼기는 잎끝이 꼬리처럼 좁게 길어지고 불규칙적인 결각상(缺刻狀) 톱니가 뚜렷하다.

이고들빼기는 고들빼기보다 더욱 건조한 곳까지 그리고 산지에서도 출현하며, 암벽 틈새나 삭막한 도시의 틈바구니에서도 잘 산다. 고들빼기는 삭막하고 메마른 곳에 살지 않고, 전형적인 농촌 전원 환경 속에서 산다. 도시화가 되면 될수록 고들빼기는 살 곳을 잃고, 이고들빼기가 그 자리를 채운다.

고들빼기 종류가 모두 그렇듯이 이고들빼기도 직사광선이 직접 내리쬐는 곳에서만 산다. 아침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 꽃이 피기 시작하고, 어두워지면 꽃잎을 닫는다. 꽃이 핀 다음에 두화(頭花)는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꽃이 다 피고 난 식물체는 고사해버리는 한해살이풀이다. 고들빼기에 견줄 바는 못 되지만, 뿌리와 잎을 나물로 이용한다. 일본에는 고들빼기 대신에 이고들빼기를 봄나물로 먹는다. 고들빼기가 일본에 분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고들빼기에 관련한 일본의 나물문화는 우리의 고들빼기 문화가 전래된 것으로 그렇게 성행하지도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고들빼기(한국식물생태보감 1, 2013. 12. 30., 김종원)

 

 

정밀 산행 장비들을 점검중

 

초입부 산죽(조릿대)이 한가득

 

조릿대꽃

줄기가 나온 지 4~5년 후 죽기 전 마지막으로 4월에 가지 끝에서 검은 자주색으로 핀다. 녹색을 띠고 잔털과 흰 가루가 있으며 어긋나게 갈라지고 갈라져 원뿔처럼 된 꽃대가 나와 끝마다 10개 정도의 이삭 같은 꽃이 달린다. 한 꽃에 1개의 암술과 수술 6개가 함께 들어 있으며 암술만 있는 암꽃, 수술만 있는 수꽃이 섞여 있다.

꽃이 핀 해 5~6월에 작고 긴 타원형의 열매가 회갈색으로 여문다. 열매가 맺히면 줄기 위쪽부터 말라 들어가며 다음 해에 군락 전체가 죽어 허옇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릿대 (약초도감, 2010. 7. 5., 솔뫼(송상곤))

 

 

 

 

 

쓰리봉에 도착

쓰리봉에는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모여 있다. 국적 불명의 명칭인 ‘쓰리봉’은 농기구인 써래가 어원이며, 시간이 지나며 쓰리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일설에는 여기가 방장산의 정상였는데, 6.25때 폭격으로 30여m가 잘려나가 지금은 방장산에서 높이가 No.3로 밀려 쓰리봉이라 한다는 설도 전한다.



 

 

 

회장님 인증

 

 

간단한 참(조식도 아닌것이 중식도 아닌것이)

계속해서 진행중

 

둥굴레 둥굴레

 

철쭉이 피어있는 산행길

 

방장산 정상부가 저만치 보인다

 

층층나무

층층나무과의 잎지는 넓은잎 큰키나무로 키 20m 정도 곧게 자란다. 긴 가지가 줄기를 빙 둘러 층층이 나오며 옆으로 뻗어 위쪽이 여러 층으로 된 넓은 둥근 모양이 된다.

산 500~1,400m 고지의 골짜기, 반 그늘진 숲속, 습한 계곡가에 서식한다. 주로 서늘한 음지에서 볼 수 있다. 군락성이 있다.

가지와 잎이 어긋나게 달린다.

길이 5~12㎝ 정도의 잎이 가지에 어긋나게 달린다. 끝이 점점 뾰족해지거나 갑자기 뾰족해지는 넓은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좌우의 잎맥은 6~9쌍이다. 어릴 때는 앞면에 누운 잔털이 있다가 점차 없어지며 뒷면에 흰 잔털이 있다. 앞면은 조금 윤기가 있다. 잎자루는 붉은빛이 돌기도 한다. 가을에 노랗다가 자줏빛 도는 붉은색이 된다.

5~6월에 새로 나온 햇가지 끝에 흰색으로 핀다. 어긋나게 갈라져 쟁반처럼 퍼진 꽃대가 나와 끝마다 지름 8㎜ 정도의 꽃이 달린다. 암술은 1개, 수술은 4개다. 꽃잎은 4장이며 겉에 잔털이 있다. 꽃받침통은 연한 녹색을 띠며 잔털이 있다.

9~10월에 단단한 핵으로 싸인 씨앗이 있는 지름 6~7㎜ 정도의 둥근 열매가 연녹색, 붉은 연노란색, 붉은 자주색, 검은색 순서로 여문다.

어린 나무는 붉은빛 도는 회갈색을 띤다. 묵을수록 붉은빛 도는 밝은 회색이 되고 세로로 불규칙하게 갈라지며 가지 떨어진 자리에 불룩한 옹이가 생긴다.

[네이버 지식백과] 층층나무 (약초도감, 2010. 7. 5., 솔뫼(송상곤))

 

 

 

봉수대를 앞두고 안부에서 쉬는중

안부(), 고개

산등()과 계곡이 만나 등고선이 서로 쌍곡선을 이루어 말안장과 같이 움푹 들어간 부분을 말한다.

 

눈앞의 봉우리 / 이런 봉우리를 몇개나 넘어야 하는지?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산죽

조릿대(다른이름)

조릿대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 중턱 이하의 숲이나 개활지에서 자라는 상록 관엽 식물이다. 생육환경은 물 빠짐이 좋고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란다. 키는 1~2m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10~25㎝로 가지 끝에서 2~3매씩 나오고 가장자리에는 가시 같은 잔톱니가 있다. 꽃은 자주색으로 포에 싸여 있고 2~5개의 꽃이 5년마다 한 번씩 피고, 꽃이 핀 다음 지상부는 죽고 없어진다. 열매는 7~8월경에 달린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식용, 잎·줄기는 약용으로 쓰인다.

(전설)

섣달 그믐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풍습이 있다. 이날 밤엔 야광귀(夜光鬼)란 놈이 몰래 들어와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달아나버려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 해 운수가 나쁘다 하여 남녀노소 없이 모두 신발을 방안에 들여 놓았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대문이나 방 위에 체나 복조리를 걸어 놓았다. 야광귀는 눈이 하나여서 방문에 걸어둔 체나 복조리의 올을 하나하나 세다 잘못 세어 다시 세고 하다가 마침내 첫닭이 울면 미처 신을 신어보지 못한 채 달아나 버린다고 믿었다. 일 년 동안 매달아 둔 헌 조리는 내려서 곡식을 이는 데 썼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릿대 (야생화도감(봄), 2010. 4. 10.)

 

지나온 방장산 능선 / 영산기맥의 초반부이기도 하다


봉수대

횃불을 이르는 봉(烽)과 연기를 이르는 수(燧)의 봉수대는 삼국시대부터 변방의 급한 일을 중앙에 알리는 통신수단으로써 높은 산에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를 신호로 전했다.

봉수대의 굴뚝에서 올리는 연기나 불꽃의 수에 따라 신호의 전달 내용이 달랐다.
해상과 육상을 구별하여서

무사시에는 1개의 홰를 올리고

왜적이 해안에 나타나면 2개의 홰,

가까이 오면 3개의 홰,

우리 병선과 접전시에는 4개의 홰,

상륙할 때는 5개의 홰를 올린 것.

오늘날 전파중계소와 비슷한 산의 정산에 세워진 봉수대가 전국 600여개에 이른다.

 

 


쓰리봉이 우뚝하다

 

등산안내도

방장산에서 본 지나온 쓰리봉 능선

 

단체 정상인증

 

정상인증 사진

 

계속 진행

 

억새봉에 도착

활공장과 쓰리봉 방장산 능선

고창읍내가 잘 보인다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인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보려고 있다

패러글라이딩

낙하산과 글라이더의 장점을 합하여 만들어 낸 항공 스포츠로 별도의 동력 장치 없이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활강하는 레포츠이다. 패러글라이딩이란 패러슈트(낙하산)와 글라이딩의 합성어인데, 글자 그대로 낙하산의 안정성, 분해, 조립, 운반의 용이성 그리고 행글라이더의 활공성과 속도를 고루 갖춘 이상적인 날개형태로 만들어졌다. 패러글라이딩은 패러슈팅과 행글라이딩의 비행 원리를 이용해 고안되었으며 바람에 몸을 실어 활공과 체공의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스릴만점의 레포츠이다.

1984년 프랑스의 등산가 Jean Mark Cuovins가 낙하산을 개조하여 처음 패러글라이더를 만들어 비행에 성공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고있는 패러글라이더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고, 간단하게 배워 비행을 즐기자 그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를 하였다. 그 결과 각국 항공협회 산하 행글라이딩협회 내에 패러글라이딩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국제항공연맹(F.A.I : Federation Aeronautique Internationale) 산하 국제행글라이딩위원회(C.I.V.L : Commission International de Vol Libre)에서도 그 조직 내에 패러글라이딩 분과를 구성하여 새로운 항공 스포츠로 성장하게 되었다.

국내에는 1986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패러글라이딩 [paragliding] (스포츠 백과, 2008., 대한체육회)

 

 

 

벽오봉까지 진출

벽오봉은 방장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로, 푸른 소나무가 많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방문산이라고도 한다

 

방장산 안내도

 

방장사 방면으로 진행

 

방장사 갈림길

 

방장사

방장사(方丈寺)는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전하는 백제 가요 다섯 편 중에 「방등산가(方等山歌)」에 나오는 사찰로, 도적 떼에게 잡힌 아낙네가 남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내용만 전하고, 가사는 전하지 않는데 노래 제목에 있는 방등산은 바로 방장산을 의미한다.

사적기가 없어 정확한 연혁을 알 수는 없다. 단 백양사의 말사로 현재의 사찰 건물은 1965년 주지 법륜(法輪)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예전에 임공사(臨空寺)가 이곳에 있었으나 임공사가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불자들이 힘을 모아 새롭게 세운 암자이다.

[네이버 지식배과] 방장사 [方丈寺]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양고살재

고창 출신 박의(朴義) 장군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청나라 누루하치 장군의 사위인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박의 장군은 1599년(선조 32)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서 관찰사 양오공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말을 잘 타고 총을 잘 쏘아 박포수로 불릴 정도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고창 사람 박의(朴義)가 수원 광교산 전투에 참여하여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하였다.

청태종은 양고리의 죽음 소식을 듣고 크게 통곡하였다고 전하며, 무훈왕에 봉하였다고 한다. 양고리가 죽은 뒤에 산으로 급하게 피하는 자를 보고 청군이 저 사람이 양부마를 쏜 사람이라 하니, 활을 잘 쏘는 애륵을 시켜 박의를 잡아 목을 베었다고 한다. 박의의 묘소는 고수면 예지리 양정마을에 있다

 

다른 명칭 유래를 살펴보면 큰 재[峙]와 작은 재[峙] 두 개가 있다 하여 양고령이라 불렸으며, 양고령 발음이 변화함으로 인해 ‘양고살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양고살재의 북동쪽에 방문산과 방장산을 잇는 등산로가 있고, 동쪽에 있는 지방도 15호선 도로를 따라가면 방장산 자연휴양림과 예전에 도적들의 근거지인 방장동굴이 있다.

양고살재는 고창읍과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을 잇는 지방도 15호선에 있는 고개로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박의 장군의 묘소는 고수면 예지리 양정마을에 있고, 후손들은 고수면과 아산면에 살고 있다. 양고살재에서 서쪽으로 지방도 15호선을 따라가면 석정온천이 나온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고살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방장산자연휴양림에 도착

 

국립 방장산 자연휴양림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 정읍 경계에 솟은 방장산은 내장산 서쪽 줄기를 따라 뻗친 능선 중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이다.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받아 왔으며 주위의 내장산, 백암산, 선운산 등의 명산을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도 결코 기세가 눌리지 않은 당당함을 보이고 있다. 지리산을 달리 방장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신이 살 듯한 신비로운 산에만 붙이는 이 이름은 청나라에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조의 선비들이 중국의 삼신산 중의 하나인 방장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방등산이라고 불렸으며 백제가요인 방등산가는 바로 이 산을 무대로 해서 지어진 노래이다. 먼 옛날 방등산에 숨어든 도둑의 무리들이 한 여인을 납치해 갔다. 남편이 구해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남편이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울다가 지쳐서 부른 노래가 방등산가라는 것이다. 이곳 방장산 중턱에는 방장산 자연휴양림이 위치하고 있다. 2000년 7월 1일 문을 연 것으로 서부지방 산림관리청(전북 남원 소재)에서 순창 회문산 자연휴양림, 무주 덕유산자연휴양림, 진안 운장산자연휴양림, 장흥 천관산자연휴양림, 함양 지리산자연휴양림, 남해 편백자연휴양림과 함께 방장산 휴양림을 관리하고 있다. 휴양림 내에는 참나무류와 소나무, 편백,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고창 방면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면 벽오봉(640m)과 고창 고개 중간의 능선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고창 읍내와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고창 고개를 지나 장성 갈재 방면으로 조금 더 가면 방장산 정상이다. 휴양림에서 정상까지는 왕복 3시간이 소요되며 석정온천으로 곧장 하산하는 산길도 나 있다. 주능선에 오르면 서해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데 이 덕분에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종종 이곳을 찾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립 방장산자연휴양림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꽃잔디도 잘 식재되어 있다

 

휴양림 입구에 모두 도착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뭔가 지나가는 차에 물건 강매하는 아저씨 같기도 하고

 

방장동굴

방장동굴과 관련된 노래인 「방등산가(方等山歌)」가 『고려사』 권 71에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그 제목과 유래만 전하고 있다. 「방등산가」는 신라 말기에 장일현(長日縣)의 한 여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온다. 신라 말년에 온 세상이 어지러워 도둑들이 고창 방등산(方等山)의 방장동굴에 본거지를 두고 고창 지역의 풍요로운 들녘에서 생산된 곡식을 훔치고 양가의 부녀자들까지 납치해 갔다. 그 가운데 도둑들에게 잡혀간 장일현의 한 여인이 남편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음을 탄식하여 부른 노래가 「방등산가」이다. 방장동굴이 방장산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방장동굴은 도적굴이라고도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방등산가

백제시대에 고창 방장산을 배경으로 쓰인 고대 시가.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방등산은 나주시 진관의 속현인 장성, 고창 경계에 있어, 신라 후기에 도적이 반등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면서 양가집 자녀들을 많이 잡아다 부렸다고 한다.

「방등산가(方等山歌)」는 방등산[방장산]에 있는 도적 떼에 의해 장일현이라는 여자가 납치되자 남편이 구해주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면서 불렀다는 노랫말인데, 현재 가사는 전해오지 않는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 17에는 「반등산곡(半登山曲)」으로 나와 있지만 두 작품의 내력은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등산가」 [方等山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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