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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6차 고흥 두방산

겨울날의 그럴듯한 산행

오늘의 야생화 : 청미래덩굴(열매)

​산행기록

○ 일시 : 2020.12.19 09:43 ~ 15:44

○ 장소 : 고흥 두방산

○ 참석 : 7인(청량,ST,자전거탄풍경,떠날꺼야,잎새공주,신고문님,산중애)

○ 높이 : 두방산 486m / 누적고도 977m

○ 거리 : 8.5km

○ 시간 : 6.0시간(휴식시간 1.8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두방산,

○ 코스 : 당곡마을 - 귀절암 - 두방산 - 코재 - 병풍산 - 비조암 - 첨산 - 흥덕사 - 당곡마을

○ 특이사항 : 맑은 겨울날의 산행

 

 

< 두방산(斗傍山) 489m >

전라남도 고흥군의 동강면 매곡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86m). 『1872년지방지도』에 처음으로 지명이 등장하는데, 두방산(斗方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 『조선지형도』, 『호남지』에는 두방산(斗榜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일본어로 둔방산이 병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지리산(智異山), 『호남지』에 지래산(智萊山)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때 송득운(宋得運)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서산이라고 하였고, 산에 귀절암이 있다고 해서 귀절산이라 불렸으며, 말 명당이 있다 고 하여 말봉산이라고 했다고도 전해진다.

향토사에는 지내산(智乃山)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유래는 당곡마을에서 산 정상을 바라보면 여인이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누워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여인의 머리와 가슴을 따서 두방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출처] 두방산[斗傍山, Dubangsan]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두방산 정상

 

산행지도

 

안내도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맞을듯

 

대나무숲길.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

 

<귀절암 동굴>

귀절암 터, 혹은 해조암海眺岩 터라고 불린다.

두 개의 동굴은 성인 2~3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 피부병을 고치는 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마시기에는 망설여진다. 동굴 안에는 무속인들이 기도할 때 사용하는 물품들이 놓여 있다.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

동굴에서 바라본 병풍산 모습

 

속속들이 집결

 

너무 깊이 들어가는것 아닌가?

 

가야할 첨산방면

첨산(尖山) 뒤편으로 순천시 별량면 첨산(尖山)이

보이는데 고흥군 동강의 첨산을 숫첨산이라 부르고 순천시 별량면 동송리의 첨산을 암첨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수방면 바다 여자만(남자들은 잘 안보인다고)

 

7형제 나무(왕벚나무)

 

고흥 팔영산 방면

 

 

청미래덩굴 열매

<청미래덩굴> 우린 맴감나무, 냉감나무 라고 불렀다

산지의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굵고 딱딱한 뿌리줄기가 꾸불꾸불 옆으로 길게 벋어간다. 줄기는 마디마다 굽으면서 2m 내외로 자라고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원형 ·넓은 달걀 모양 또는 넓은 타원형이며 두껍고 윤기가 난다. 잎자루는 짧고 턱잎이 칼집 모양으로 유착하며 끝이 덩굴손이다.

꽃은 단성화로 황록색이며 5월에 산형꽃차례[傘形花序]를 이룬다. 꽃줄기는 길이 15∼30mm이고 작은꽃줄기는 길이 1 cm 정도이다. 화피갈래조각은 6개이며 뒤로 말리고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씨방은 긴 타원형으로서 3심이며 끝이 3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둥글며 지름 1cm 정도이고 9~10월에 붉은색으로 익으며, 명감 또는 망개라고 한다. 열매는 식용하며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뿌리를 이뇨 ·해독 ·거풍 등의 효능이 있어 관절염 ·요통 ·종기 등에 사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차이나 등지에 분포한다. 줄기가 곧고 가지가 많으며 잎이 작은 것을 좀청미래(var. microphylla)라고 한다.

[출처] 청미래덩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여기도 주상절리 흔적이

< 주상절리 ( Columnar joints , 柱狀節理 ) >

냉각절리(cooling joint), 수축절리(shrinkage joint, contraction joint)라고도 하며, 용암 등의 화산암이 분출하여 냉각될 때 수축되면서 형성되는 절리로서 단면이 5각형 혹은 6각형 형태를 가지는 길쭉한 기둥모양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현무암질 용암에서 분출하여 흘러내리는 용암이나 응결된 화산쇄설물로 형성된 용결응회암(ignimbrite)과 같은 화산암에서 암석이 냉각되고 수축될 때 규칙적으로 형성되는 수축절리 혹은 냉각절리를 말하며, 절리들로 분리된 암석들의 단면이 4∼6 각형을 이루는 길쭉한 기둥 모양의 형태를 보여준다. 기둥들의 직경은 수 cm에서 수 m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길이는 30m에 달하는 긴 것도 있다. 이 기둥들은 전형적으로 서로 평행하며 직선적이다

[출처] 주상절리 (지질학백과)

 

선바위에서

 

두방산에 다시서서

 

틀린그림찾기

 

두방산 정상에서

 

ST님

 

 잎새공주님이 막대들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떠날꺼야님

 

진정 이것이 길이란 말인가요? 

 

비조암

 

병풍산의 너럭바위

 

병풍산 정상에서

 

 

여기도 명품나무가

 

비조암의 얼굴바위(미국의 큰바위얼굴을 닮았음)

미국 사우스 가코다주의 러시모어산의 큰바위얼굴

 

비조암위의 신고문님

 

조금 돌아가자 누에머리를 닮았어. 해태를 닮기도 했고 

 

또 첨산방면

 

멋진기도처

 

늦은 중식시간

 

사랑의 열매

 

첨봉인증

 

흥덕사

흥덕사는 고흥의 관문이라 할 첨산 아래에 위치해 있고 1929년에 기불대사가 초가로 지어 석로암이라 하다가 1962년 첨산사로 개칭하고 1973년에 확장하면서 극락전을 신축하고 사명을 흥덕사라 했다. 정면 3칸 팔작지붕의 극락전, 산신각, 2층 누각 형태의 종각, 요사, 해탈문, 강당 등이 있다. 절이 자리한 첨산은 이 지역의 명산으로서, 18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북방 중턱에 낙안사, 남방 중턱에 흥양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흥덕사가 창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낙안사에 있던 미륵불이 절 부근까지 굴러 내려왔다는 말이 전한다.

 

드디어 첨산에...

정유재란 1598년 4월, 고흥으로 상륙해 내륙으로 들어오던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 부대와 고흥 의병들의 치열한 전투가 첨산에서 벌어졌다. 의병 선봉에는 이순신 장군의 군관을 지냈던 송대립 장군이 있었다. 이 전투에서 송 장군은 아들 송심과 함께 분전하다 순국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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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34차 순창 회문산 장군봉

산행하기 좋은 날씨

오늘의 야생화 산국 주홍서나물

​산행기록

○ 일시 : 2020.11.21 09:58 ~ 15:53

○ 장소 : 순창 회문산, 장군봉

○ 참석 : 4인(청량,잎새공주,신고문님,산중애)

○ 높이 : 회문산 837m, 장군봉 780m / 누적고도 881m

○ 거리 : 11.4km

○ 시간 : 5.9시간(휴식시간 1.3시간) / 이동시간 1.5시간

○ 배지 : 회문산, 장군봉

○ 코스 : 회문산휴양림 - 돌곶봉 - 시루바위 - 헬리포트(사거리) - 장군봉 - 헬리포트 - 여근목 -

작은지붕 - 천근월굴바위 - 회문산(정상) - 삼연봉 - 출렁다리 - 휴양림

○ 특이사항 : 산행하기 좋은 날씨

 

< 회문산(回文山/回門山)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에 있는 산으로, 순창군과 임실군을 가르고 있다.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아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는데다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소설 《남부군》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동학혁명과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이곳에 자리잡고 700여 빨치산들이 오랫동안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빨치산의 훈련장이었던 곳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출처] 회문산(回文山/回門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원래 회문산 정상표지

 

새로 세운 정상표지석

 

회문산 산행지도

 

휴양림에서 출발

< 국립 회문산자연휴양림 >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자연휴양림으로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회문산은 최익현을 비롯하여 임병찬, 양윤숙이 이끄는 의병의 항일무장투쟁 무대이며 한국전쟁 전후에 지리산과 더불어 빨치산의 근거지로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무대이다. 회문산 북서쪽 해발 780m의 장군봉 아래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빨치산 간부 훈련장이던 노령학원이 있었던 중턱에 산림욕장이 조성되었다. 2,876,000㎡(87만 평)에 조성된 자연 휴양림은 빼어난 절경과 함께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되어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휴양림 입구에는 성벽처럼 쌓아 올린 노령문이 있다. 그 옆에 폭포가 있고 길이 30여m의 구름다리 위쪽에 전망대가 있어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회문산 주봉으로 가장 오르기 쉬운 안정리로부터 3시간이 걸리는 5.5km의 험한 바윗길과 울창한 숲속에 도로를 개설하여 정상에 오르기가 쉽다.

자연 발생한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 수종을 이루며 단풍나무, 산벚나무 등과 진달래, 으름, 붉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어 봄가을에 아름다운 꽃과 단풍을 볼 수 있다. 꾀꼬리, 산비둘기, 뜸부기, 까투리, 장끼 등도 서식하고 있다.

휴양림에는 비목공원, 빨치산사령부 등 교육 시설과 물놀이장, 체력단련시설, 배구장 등 체육시설이 있으며 대피소, 정자 다목적광장, 산책로, 등산로 출렁다리 등이 있다. 주변에 내장산국립공원과 강천산 군립공원, 추월산, 금성산성 담양호, 옥정호 사선대 국민관광지 등 관광 명소가 있다.

[출처] 국립 회문산자연휴양림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돌비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첫번째 봉우리 돌곶봉

 

능선따라 걷습니다

 

멀리 산그리메

 

시루바위

 

시루바위에서 신고문님

 

소원들이 모인 돌무더기

 

가야할 장군봉

 

임도 삼거리 도착

 

주홍서나물 아직 꽃들이 남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네요

<주홍서나물>

높이 30~70cm로, 줄기는 곧게 서며 연약하고 성긴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잎자루가 있다. 달걀 모양 또는 긴 타원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크기가 다른 거치가 있으며, 위쪽의 잎은 양끝이 길게 뾰족하고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흰색 또는 붉은색으로 피며, 머리모양꽃차례는 모두 아래를 향하여 매달리며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총포는 원통형이며, 길이는 9~10mm 정도이다. 머리모양꽃차례의 가장자리에 혀 모양의 꽃은 없고, 통상화는 긴 관상으로 아래쪽의 판통은 백색이다. 관모도 백색이며 판통보다 짧다. 열매는 9월에 익는다.

아프리카 원산인 귀화식물로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홍서나물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멀리 지리산 능선이 보이고

 

지나온 임도

 

그렇게 고대하던 장군봉에 서서

 

안국장님

 

산죽의 산행길이 마치 한라산에 온듯

 

돌아가는 길

 

여근목 한국전쟁때 온산이 불탔는데 이 나무들만 살아 남았다고

 

동양 최고의 여근목 / 여근목의 생김새가 그야말로 요상하고 희화적이다. 한국전쟁과 빨치산 토벌때 온 산이 불을 질렀는데 여근목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작은 지붕이 눈앞에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생과 조카의 묘가 안치된 천주교의 성지이며 증산교와 청학동 도연으로 불리고 있는 갱정유도(更定儒道)의 발상지가 이 산의 금강암이다. 예로부터 이 산에는 다섯 선인이 바둑을 두는 형상인 오선위기(五仙圍基)의 명당터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옛날 백룡이라는 산적 두목이 무리들을 이끌고 이곳에 웅거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산봉우리에는 그들이 살았던 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출처] 회문산(回文山/回門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천근월굴 설명

 

천근월굴바위

천근월굴은 큰 구멍이 나 있는 바위로 두세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과 정면에 상형문자 천근월굴이라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는 중국 송나라 시인 소강절 선생의 유가 시에 나오는 글로 천근은 남자의 성, 월굴은 여자의 성을 나타내 음양이 한가로이 왕래하여 소우주의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해진다는 뜻이다

글은 동초 김석곤씨가 1900년 초에 모악산 수왕사 옆에 있는 무량굴과 함께 새긴 것으로 알려졌다.

 

큰지붕에 도착(참고로 모두 말띠랍니다)

 

정상인증

 

안국장님 정상인증

 

잎새공주님 정상인증

 

손에 들고있는것이 뭐여 

 

신고문님 인증

 

큰지붕 인증

 

마지막 삼연봉을 돌아서

 

태풍에 쓰러진 용틀임소나무가 아직 남아 있네요

 

예전 용틀임 소나무 모습(펌)

 

구름다리를 건너면 산행종료

 

노령문이라 합니다 순창에서 임실 넘어가는 갈재란 고개가 있는데 한자로 노령

< 노령문 > 순창군 과 임실군의 경계인 갈재(354m)에서 유래하여 회문산은 지형적인 요새로 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을 중심으로 양윤숙, 임병찬 선생의 의병활동의 근거지였고, 6.25전란 전후 빨치산 활동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안고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자리와 임시 간부학교였던 노령학원터가 남아있다.

 

노령문 포토존

< 만일사(萬日寺) >

만일사는 백제시대 384년(침류왕 1년)에 창건 하였다는 설과 삼국통일 후 673년(문무왕 13년)이라는 설이 있으며, 조선 초기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 되어 이성계의 조선 창업을 돕기 위해 만일동안 기도를 한데서 만일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고추장 시원지로 전하는데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만일사로 가는 그 길 중간에서 먹었던 식사에 올라온 고추장 맛에 끌려 왕이 된 후 진상된 고추장이 순창 고추장이라고 한다.

만일사는 1952년 봄에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전소되었다. 이 때 마을이 비행기로 폭격 돼 마을이 소각되었다. 인근에 있는 안심마을도 그랬다. 비행기로 휘발유통을 떨어뜨린 후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휘발유통에 불이 붙게 하였던 것이다. 만일사가 빨치산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알려진 뒤에 경찰들이 불을 질렀다고 한다.

[출처] 전북 순창 만일사(萬日寺) 전화(1952년)|작성자 noritur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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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8차 고창 화시산(범바위)

따사로운 늦가을 추억길

오늘의 야생화 산국 구절초 층꽃

​산행기록

○ 일시 : 2020.11.15 09:47 ~ 16:56

○ 장소 : 고창 화시산

○ 참석 : 4인(자전거탄풍경,떠날꺼야,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화시산 범바위 280m / 누적고도 844m

○ 거리 : 12.2km

○ 시간 : 7.1시간(휴식시간 2.6시간) / 이동시간 1시간

○ 배지 : -

○ 코스 : 고창고인돌공원 - 직업재 - 회암봉 - 행정치 - 범바위 - 백운재 - 운곡습지 - 직업재 -

고인돌공원

○ 특이사항 : 따사로운 가을산행

 

 

 

< 화시산(火矢山) >

고창군의 아산면 용계리 · 운곡리와 부안면 사창리 · 상등리 등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403m). 『신증동국여지승람』(고창)에 "화시산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화시'라는 지명과 관련해 『여지도서』(흥덕)에 "화시산은 현 서쪽 10리에 있는데, 반등산(현 방장산)으로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소요산에 이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홀연히 저절로 쪼개져 불화살처럼 날아갔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대동여지도』 (18첩 5면)에 고창현과 흥덕현 경계에 있는 사슬치(沙瑟峙)에서 북서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다 화시산을 이루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도 『해동지도』, 『광여도』 등의 지도에 두 현의 경계부에 '화시산'이 기재되어 있다.

북쪽의 소굴치와 최고봉인 화시봉(화실봉) 사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러 암굴들이 줄지어 있는데, 신라의 어느 왕자가 난을 피해 백제 땅인 고창으로 와서 가마를 타고 산을 오르며 투구를 벗어 놓았다는 투구바위(시루봉), 가마가 무거워 내려놓았다는 가마바위(상여바위), 촛불을 켜놓은 촛대바위, 수행한 장수가 호랑이를 몰아내고 왕자를 모셨다고 하는 왕자굴 등이 그것이다. 산의 남쪽 줄기 성틀봉 주변의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에는 수백 기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출처] 화시산(火矢山)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화시산 정상(펌)

 

 

 

< 굴치>

주변에 굴이 있어서 ‘굴치’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고개 아래 또 고개가 있어서 이 고개를 큰굴치라 하고 아래 있는 고개를 소굴치라고 부르고 있다.

<행정치>

행정치는 옛날 은행나무 옆에 정자와 주막집이 있어 먼 길을 떠나 나그네들이 쉬어 갔던 곳이다. 행정치 북쪽은 운곡저수지와 화시봉이 있고, 남쪽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지, 석성이 있는 성틀봉, 그리고 고창천이 흐르고 있다.

죽림리에는 전봉준 장군 생가 터가 있다.

 

 

고인돌박물관을 들머리로

<고창고인돌박물관>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고인돌을 테마로 한 박물관으로 2008년 9월 개관하였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고인돌유적'의 체계적 보존과 전승을 위해 지어졌다.

박물관 2층은 상설전시실로 고창 선사인들의 모습을 실물크기로 재현하고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생활상,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관이 지어진 고창군에는 약2,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높은 밀집도를 보이면서도 개석식, 바둑판식, 탁자식, 지상석곽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출처] 고창고인돌박물관 (고창군 - 두산백과 두피디아)

 

고인돌 유적

 

이 거대 고인돌은 어떻게 옮겼을까요?

 

표지판 디자인도 습지에 맞게 이렇게

 

다시 돌아올 직업재

 

첫번째 봉우리 호암봉에서

 

 

대나무숲도 보이고

 

 

능선따라 운곡습지 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네요

 

 

능선에서 본 운곡습지의 모습

 

가을날의 산행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방면

 

고인돌휴게소(상향)

 

 

목포까지 쭉뻗은 서해안 고속도로

 

방장산도 보이고

 

 

왕자굴(펌)

화시봉 정상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북쪽(용흥방면)으로 70m정도를 내려가 골프장 쪽으로 20m룰 내려서면 왕자굴이라 불리는 바위굴이 있는데 너비 2.5m, 높이 2~3m, 깊이 15m에 이른다

구전에 의하면 어느 왕자가 난을 피하여 후일을 준비할 곳을 찾아 나섰다가 화시산을 기거할 장소로 정하고, 굴치에서 가마를 타고 화시봉에 오르게 되었는데 덥고 힘들어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놓은 자리가 바위로 변해 투구바위로 부르게 되었다.

왕자를 태운 가마는 바위 능선을 지나 촛불을 밝히고 요기와 휴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 초가 바위가 되었다는 것으로 촛대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가파른 길이라서 더 이상 가마를 타고 오를 수 없어 가마에서 내려 산에 오르게 되었고 내려놓은 가마가 바위로 변하여 가마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왕자 일행이 화시봉 근처에서 호랑이 울음소소리가 들리는 굴을 발견했는데 호랑이를 몰아내고 왕자를 모시게 되었다. 지금도 굴안에는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용천이라는 샘이 있으며 산상무쟁처로 치성을 드리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산중 표지판)

 

입구(펌)

 

내부에서본 모습(펌)

 

사랑의 열매 청미래덩굴

 

고창방면

 

백운재에 서서

 

 

차나무에도 꽃이 피고

 

 

운곡람사르습지탐방안내소

<고창운곡람사르습지>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일원에 있는 습지로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운곡습지에는 식물, 육상곤충, 저서성무척추동물, 양서파충류, 조류, 포유류, 동식물 플랑크톤 등 총 830여 종이 서식한다.

습지는 면적 1,797㎡ 규모로 과거에는 이곳을 개간하여 계단식 논으로 사용하였으나 영광원자력발전소의 건설로 운곡저수지 물이 사용되면서 폐경지가 되었고 이후 원시습지상태로 스스로 복원되었다.

운곡람사르습지는 다양한 생태환경이 만들어져 희귀 야생 동식물이 생존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로 지정된 수달, 황새, 삵, 구렁이, 새호리기, 가시연 등이 서식하고 있다.

[출처]고창운곡람사르습지 (고창군 - 두산백과 두피디아)

 

늦깎이 구절초

 

산국

들국화의 한 종류로서 개국화라고도 한다.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뿌리줄기는 길게 벋으며 줄기는 모여나고 곧추선다. 흰 털이 나며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필 때 마른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의 달걀 모양이며 길이 5∼7cm, 나비 4∼7cm이다. 깃꼴로 깊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1∼2cm이다.

꽃은 9∼10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두화(頭花)는 지름 1.5cm 정도로서 가지와 줄기 끝에 산형(傘形) 비슷하게 달린다. 총포는 길이 약 4mm이고, 포조각은 3∼4줄로 늘어서며 바깥조각은 줄 모양이거나 좁은 긴 타원 모양이다. 화관은 통 모양이며 끝이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10∼11월에 익으며 길이 1mm 정도이다.

꽃은 진정·해독·소종 등의 효능이 있어 두통과 어지럼증에 사용한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한국, 중국 북부, 일본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국 [山菊]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습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창군에서 조성한 오베이골 생태 탐방로가 있는 오베이골은 다섯 방향을 의미하는 ‘오방골’의 전라도 방언이다. 오베이골은 굴치·행정치·안덕·용계·운곡으로 통하는 오거리를 뜻한다. 굴치의 물줄기는 주진천[인천강]에 합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2011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운곡습지는 국가생태관광지로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내뿜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습지 탐방로는 총 4가지 코스로 구성돼 있다.

1코스는 3.6㎞ 길이로 50분 정도 소요되며, 고인돌 유적지에서 오베이 골을 따라 운곡람사르습지에 이른다.

2코스는 9.5㎞로 2시간30분 소요되며, 운곡저수지를 한 바퀴 일주하면서 안덕제, 운곡서원, 조류관찰대, 용계마을을 두루 거치는 코스다.

3코스는 가장 긴 10.2㎞로 3시간30분 이상 소요되며, 고인돌 유적지에서 화암봉, 옥녀봉, 호암재, 무재등, 화시봉 등 일대 주요 산봉우리와 능선을 지나 운곡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에 이르는 코스다.

4코스는10.1㎞ 코스로 2시간50분 정도 소요되며, 탐방안내소(친환경 주차장)에서 출발해 굴치농원, 전망대, 인덕사 옛 터, 물맞이폭포, 백운재를 거쳐 운곡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에 이르는 코스다.

[출처]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직업재로 가는길

 

 

운곡람사르습지 표지석

 

고인돌공원 도착

 

선운산레이크건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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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4차 무주 적상산

가을날의 평화로운 산행

오늘의 야생화 쑥부쟁이 삽주

​산행기록

○ 일시 : 2020.10.17 10:50 ~ 14:43

○ 장소 : 무주 적상산

○ 참석 : 8인(청량,아우야,신고문님,둥굴레,떠날꺼야,잎새공주(2),산중애)

○ 높이 : 적상산 1,031m / 누적고도 287m

○ 거리 : 8.6km

○ 시간 : 3.9시간(휴식시간 1.3시간) / 이동시간 3시간

○ 배지 : 적상산, 향로봉

○ 코스 : 산정호수 - 적상산사고 - 안국사 - 안렴대 - 기봉 - 향로봉 - (회귀)

○ 특이사항 : 산행하기 좋은 날씨

 

 

 

< 적상산(赤裳山) >

높이는 1030.6m이다. 덕유산국립공원 지역에 속하며, 4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고,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중생대 백악기 신라층군(新羅層群)에 속하는 자색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은 해발고도 850~1,000m의 평정봉(平頂峰)으로 주봉(主峰)인 기봉과 향로봉(1,025m)이 마주보고 있고, 정상 일대가 흙으로 덮인 토산(土山)이라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산정이 평탄한 반면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하며 물이 풍부하므로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자연요새이다. 그 까닭에 적상산성(사적 146)이 축성되었는데,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산중에는 안국사(安國寺)와 조선시대에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고, 장도바위·장군바위·처마바위·천일폭포·송대폭포·안렴대 등의 자연명소가 있으며,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長刀)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 분지의 해발 800m 지대에는 산정호수(적상호)가 있는데, 양수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이다. [출처] 적상산 [赤裳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적상산 향로봉이 정상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정상 기봉은 통신시설이 들어서 있다.

 

적상산산행 개념도

 

가는길 적상산의 모습(붉게 단풍들면 붉은치마를 두른듯한 모습이라고)

 

적상산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적상산 사고지

 

특별히 사고지를 찾아봅니다

 

< 적산상사고 >

북방에 위치한 묘향산사고(妙香山史庫)가 후금의 위협뿐만 아니라 사고 관리의 소홀로 소장 도서가 망실(亡失)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다른 적당한 장소에 실록을 이치(移置)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1610년(광해군 2) 순안어사(巡按御史) 최현(崔睍)과 무주현감 이유경(李有慶)의 요청에 따라 사관을 적상산에 보내 땅 모양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리하게 하였다. 1614년 적상산성 안에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했으며, 4년 뒤인 1618년 9월부터 실록이 봉안되기 시작,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서 보관하였다.

1641년에는 선원각(璿源閣)을 건립하고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하여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병자호란 때 5사고 중 마니산사고(摩尼山史庫)의 실록이 산실(散失)되어 이를 다시 보완하는 작업이 1666년(현종 7)에 시작되었다.

이 때 적상산사고본을 근거로 등사 · 교정 작업을 했는데 3도 유생(三道儒生)이 300명이나 동원되었다. 이 사고의 설치를 계기로 사고의 수호와 산성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승병을 모집하고 수호 사찰(守護寺刹)을 건립하는 등 여러 방안이 강구되었다.

사고 설치 직후에는 승려 덕웅(德雄)이 승병 92명을 모집해 산성을 수축하는 한편, 분번(分番)으로 사각(史閣)을 수호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사고를 지킬 사람이 없어 승려 상훈(尙訓)이 사고의 서책을 성밖의 석굴(石窟)로 옮겨 보관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사고에 다시 봉안하였다. 사고의 수호가 이와 같이 어려워지자 1643년 산성 안에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해 수호 사찰로 하였다.

[출처] 적상산사고 [赤裳山史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층의 전시관

 

조선왕조실록이 보관중이다

 

적상호의 단풍

 

안국사 오름길

 

< 안국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출처] 안국사 [安國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안국사 표지판

 

삽주

삽주는 우리나라 각처 산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물 빠짐이 좋은 양지나 풀숲에서 자란다. 키는 30~100㎝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8~11㎝로 표면에 광택이 나고 잎자루는 길이가 3~8㎝이며, 뒷면은 흰빛이 돌고 가장자리에 짧은 바늘 같은 작은 가시가 있으며 3~5개로 갈라진다. 꽃은 백색 또는 홍색으로 피고 지름은 1.5~2.0㎝이며 원줄기 끝에 뭉쳐서 핀다. 열매는 9~10월에 갈색으로 익으며 위로 향한 은백색 털이 뭉쳐 있고 갓털의 길이는 0.8~0.9㎝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꽃대는 그대로 남아 있고 종자는 모두 날아가고 없다. 어린잎은 식용,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삽주 (야생화도감(여름), 2010. 6. 28,)

 

단풍이 절정중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적상산 정상을 찾아서(기봉)

 

신고문님도 최고봉 인증

 

산행길도 근사하게 변함

 

안렴대에 도착

 

< 안렴대 >

무주군의 적상면 괴목리에 소재한 바위이다. 적상산 꼭대기 서쪽에 있는 바위로 적상산성 안에 있는 호국사 서쪽 절벽에 우뚝 솟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상산이 꼭대기에 있다. 그 길이는 여러 길[丈]이나 되는데, 그 위에 수십명이 앉을 만하다. 동쪽은 가야산, 서쪽은 황해, 남쪽은 지리산, 북쪽은 화악(華岳)을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일 문헌에 "옛날 거란병이 쳐들어왔을 때 삼도 안렴사가 이곳에서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속세의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바위 안에 큰 석굴이 있으며, 고려 말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삼도 안렴사(三道 按簾使)가 이곳에 피난하였다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출처] 안렴대 [按簾臺, Allyeomdae]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적상산성에서의 풍경(조망 끝판왕)

 

운무속의 덕유산이 보이고

 

작품활동중인 신고문님 

 

산성느낌이 남

 

얼마나 수고로운 삶을 살았는지...

 

여름과 가을사이의 산행길

 

통행로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요 

 

향로봉 가는길 / 멋지쥬

 

향로봉에서

 

지회장님 / 정치인들이 살짝 옆으로 서던데 혹시 

 

안국장님은 초등학교때 배운 바른자세로

 

떠날꺼야님 / 표지판을 금방 세운듯한 준공자세

 

향로봉 조망처

 

잎새공주 솔로

 

향로봉 조망처에서 한컷

 

이제 중식모드

 

즐거운 중식시간

 

돌아 오는길 정상부(기봉) 사진

 

그새 단풍이 더든 듯 

 

안국사 일주문 정비공사중

 

길아래엔 산성성벽이

 

약수터

 

호국사비

적상산의 호국사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조선시대 중기 1645년(인조 23)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던 인물인 이식의 건의로 호국사를 창건하고 세운 비이다. 이면비로 대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총 높이 1.78m이다. 직사각형의 비석 사면에 안상을 배치하고 좌우에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중앙에는 4개의 고사리모양의 장식을 조각하여 돌출시켰으며 상두면에도 연꽃을 새겨 넣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상산성 호국사비 [赤裳山城 護國寺碑]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호국사비 안내판

 

적상산성

 

양수발전소 전망대

<무주양수발전소>

양수 발전소는 밤중에 남아도는 전기를 이용하여 하부 저수지의 물을 상부로 끌어올려 전기 사용량이 최고에 이르는 낮에 다시 하부 저수지로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이다. 무주양수발전소는 청평, 삼랑진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건설된 양수 발전소이다.

동력 자원부가 1986년에 확정한 장기 전원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급격한 전기 수요 변동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예비 전력으로서 양질의 전기를 공급하고, 나아가 이러한 전기 수요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대용량의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의 출력 증감으로 인한 기기의 수명 단축이나 효율 저하 등을 보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1988년 한국 전력이 2872억 원을 투입하여 공사에 착공한 이후 1995년 5월에 준공되었다. 1호기 상업 발전 개시일은 1995년 2월 28일이며, 2호기 상업 발전 개시일은 1995년 4월 30일이다. 2001년부터 한국 전력 공사에서 분리된 한국 남동 발전이 운영을 시작하였다. 2009년에는 양수 발전소 폐 터널을 무주군에 임대하였고, 무주군이 머루 와인 저장용 터널로 사용하면서 연 7,000여 명이 관람하는 새로운 무주의 관광 자원이 되었다. 2010년에 1995년부터 사용되어 오던 양수 주제어 설비를 분산 제어 시스템으로 교체하였다. 2011년 1월부터 한국 수력 원자력이 운영하고 있다.

[출처] 무주양수발전소 [茂朱揚水發電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무주양수발전소 조합수조

 

하산길에 본 상부댐체 

 

가을날 적상산 오름길(펌)

 

구불구불 적상산 오름길

 

< 무주머루와인동굴 >

무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인 머루와인을 저장하고 숙성시키는 동굴이며 길이는 약 270m에 달한다. 와인동굴 내부는 자연적으로 연중 13~17℃의 최적의 온도가 유지되어 천연적인 와인저장소로 이용된다. 이곳에는 약 20,000병의 와인이 저장된다고 한다.

 

동굴입구 / 광물탄광이 아닌 발전소 작업용 통로를 와인머루동굴로 활용

 

동굴에서 단체샷​

 

내부는 경관조명으로

 

떠날꺼야님이 대표로 한잔받음

 

이제는 자작(자작이면 상당히 높은 계급)

 

 와인족욕중

 

천사의 날개

 

천사의 미소

 

훗날 30년뒤에 이 모습으로 다시 찍으세요

 

가을날의 오름길 풍경(펌)

 

장도바위(펌)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長刀)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까지 병사를 이끌고 가 목호들의 난을 평정하고 개선길에 오른 최영 장군의 용맹함이 앞길을 가로막는 높은 바위를 단칼에 쪼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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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1차 인제 봉정암

급조된 무박산행 그러나 만만치 않은...

오늘의 야생화 꽃향유 구절초

​산행기록

○ 일시 : 2020.10.9 07:07 ~ 16:28

○ 장소 : 인제 봉정암

○ 참석 : 7인(청량,자전거탄풍경,떠날꺼야,신고문님,김고문님,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봉정암 1,220m / 누적고도 778m

○ 거리 : 21.8km

○ 시간 : 9.4시간(휴식시간 1.6시간) / 이동시간 7시간

○ 배지 : 용아장성,옥녀봉

○ 코스 : 백담탐방지원센터 - 백담계곡 - 백담사 - 수렴동대피소 - 쌍용폭포 - 봉정암 - (회귀)

○ 특이사항 : 울릉도 산행을 대신한 특별한 산행

 

 

< 봉정암(鳳頂庵)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율사가 중국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출처] 봉정암 [鳳頂庵]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봉정암 모습

 

봉정암 가는길

 

 

봉정암 산행지도

 

이른아침 백담사 주차장은 사람들의 말소리에 깨어나기 시작한다

 

밤새 달려온  나나고속관광버스

 

백담사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

 

멀리 6시간을 달려서온 7인 석양의 7인아닌 새벽의 7인

 

우리가 타고갈 버스 도착

 

백담사길은 오는길에 보기로하고 패스. 대청봉에서 사찰까지 100개의 담(물이 고인곳)이 있다하여 백담사라 한다고 한다

<백담사>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흐르는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다.

신라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건립하여 처음에는 한계사라 불렀으나 그 후,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100개 있다 하여 백담사라 명명되었다.

십여 차례 소실되었다가 6. 25동란 이후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백담사는 번잡했던 외설악에 비해 한적하고 원시림에 가까운 비경을 간직한 내설악의 입구에 위치해서 봉정암, 오세암 등 외딴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 내설악산을 대표하는 도량이다.

시인 겸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이 이 곳에 머물면서 수도하며 깨달음을 얻어 [불교유신론], 시집 [님의 침묵] 등을 펴내며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친하였으며,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 수행을 하는 곳이다.

 

백담사에는 보물 목조아미타불좌상이 극락보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데 18세기 전반 불상 가운데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백담사의 암자인 봉정암은 자장율사가 중국 유학길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백담사에서 산길로 11킬로미터나 더 올라가는 1,244미터 높이의 봉정암 뒷산에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석가사리탑)이 놓여 있다. 또 다른 암자인 오세암은 동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곳으로 부처님의 가피로 어린 동자승이 긴 겨울을 무사히 보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출처] 백담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백담사 설명판

 

백담계곡은 흩어졌다 모아졌다 이렇게 흐르고

백담사 앞 계곡 한편에는 백담사를 다년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돌탑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계곡물도 만만치 않음 

 

본격적인 트래킹 시작

 

초입 산행길 만으로 이미 훌륭합니다

봉정암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이란 표현이 생각납니다

 

울릉도가 태풍영향으로 취소되어 선택한 백담사길

 

오늘 갈길이 멉니다. 쓰고 보니 이상함. 뭡니까 이거

 

암반바닥위에 비취색 계곡수가...

 

바위의 계곡 

 

계곡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지나고 

 

누가봐도 선녀들이 노닐었을듯한...

 

또다시 산중의 산행길

 

암반투성이라 그대로 흐를수 밖에 없습니다

 

꽃향유도 수줍게시리 

 

계곡따라 진행되는 완만한 길 

 

계곡이 보이는 조망처에서는 한컷씩 

 

 아직까진 평이한 산행길

 

다행이 건물이 나타남

 

도중 영어사는 산객들의 쉼을 요구합니다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계곡옆 데크길 

 

그냥 작품

 

이어서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음 

 

산속에서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김고문님

 

위험구간 통과중

 

또다시 천상의 계곡

 

용아장성의 이빨이 보이기 시작 

 

계곡을 따라 계속 진행

 

 계곡중에 소나무섬이...

 

계곡만 본다는 것이 그만

 

능선도 만만치 않음 

 

계곡 데크길을 계속 진행중

 

 천상의 소들이 나타남

 

계곡따라 가는길 아직은 걸을만 합니다.

 

어떻게 찍어도 작품

 

바윗길도 진행중

 

다시금 계곡옆 데크길 

 

계곡물이 없어도 설악산 계곡이 틀림없음

 

이러한 100개의 소(담)이 있다는데

 

용아

 

그나마 편안한 동네 이장님 분위기

 

작품사진 들어갑니다 

 

오를수록 거칠어지는 계곡

 

수량이 적어 가늘지만 그래도 폭포는 폭포

 

 이거슨 철옹성 / 누가 감히 처들어 오겠어요

 

생과사

 

좁아진 만큼 가팔라진 계곡

 

쌍폭폭포에서

<쌍폭>

백담사(百潭寺)에서 동쪽 12㎞ 지점인 강원도 인제군의 북면 용대 2리에 위치한 폭포이다. Y자형으로 낙하하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쌍폭으로 원래 이름은 쌍용폭(雙龍瀑)이다. 이 폭포는 용손폭(龍孫瀑)과 용자폭(龍子瀑)을 거느리고 있는 봉정곡의 구곡담과 청봉곡 십이폭(十二瀑)의 양 계류가 합쳐지는 Y자형의 폭포이다.

[출처] 쌍폭(雙瀑)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쌍폭모습 

 

넌 바위 난 나무 / 그러나 덧없는 시간 / 이미 바위가 되어버린듯한 나무 / 족히 수백년은 된듯

 

단풍과 나무와 바위와 계고수와 하늘의 조화

 

다시금 오름길

 

하산하는 사람들이 부러울뿐

 

깔딱고개에서 마지막 숨고르기를

 

이래서 설악산 설악산이라 하는듯

 

드디어 깔딱고개에 오름

 

가을은 이미 설악산 2/3를 점령한듯 합니다

 

봉정암 가는길 / 갑자기 어떤 기대감이

 

봉정암에 도착. 소청까지는 포기하고 회귀결정

‘봉정(鳳頂)’

선덕여왕 12년(643)에 당나라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이곳에 도착하여 주변 경관을 살펴보았다. 뒤쪽으로는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의 산줄기가 이곳에서 멈춘 뒤 기암절벽의 지세를 형성했고, 눈앞의 바위들은 질서 정연하게 좌청룡, 우백호를 연출하며 포근하게 봉정암 터를 감싸고 있었다. 연화대 위에서 바라보면 왼편으로 용아장성이, 오른편으로는 공룡능선이 펼쳐지고, 바로 그 아래 골짜기에 자연석탑을 쌓은 듯한 바위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천하의 길지를 발견한 자장율사가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적멸보궁을 세우려 하자 봉황이 날아와 지금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봉정암에 서서

 

상당히 조화롭다는 생각도 갑자기 해봄 

 

봉정암 진신사리탑(펌)

봉정암은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오대산 상원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

봉정암 법당 옆 바위 위에는 자장율사가 가져왔다는 사리를 봉안한 고려시대의 석탑이 있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 석가사리탑은 5층의 석탑으로 높이가 3.3미터인데, 전형적인 신라 양식을 생략한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띠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있고, 그 위에 큼직한 원뿔형 보주가 놓여 있다. 어디 한 군데 결손된 부분 없는 완전한 형태의 석탑으로 주변의 빼어난 산세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석가사리탑(보물제1832호) 설명

 

근처에서 중식

 

 

어느 시인이 무슨 언어로 이런 풍광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망부석인가요?

 

이런곳에 암자가 있다니...

 

그냥 사방이 비경임

 

소소한 계곡들도 단풍과 어루러지면서 

 

이제 하산길

 

신고문님 한컷

 

계곡중간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

 

암봉들로 그냥 작품

 

계곡의 이름없는 폭포와 소. 대청봉에서 사찰(백담사)까지 100개의 담(물이 고인곳)이 있다하여 백담사라 했다함

 

바위절벽

 

하산길 암릉을 보며 

 

푸르디 푸른 계곡소를 보면서

 

이건뭐

 

하산길 / 이러다 캄캄해지겠다

 

그래도 열심히

 

이런데가 있었나? 

 

바위밑을 조심조심

 

중간 암자(영어사)에 이르고 

 

하도 많이 지나다녀 나무가 닳아짐

 

참나무숲길

 

두 친구분이 정답게

 

백담사앞 계곡의 돌탑군들

 

뭡니까 이거

 

백담사

 

조선불교유신론을 주장하고 독립운동과 님의 침묵등을 발표한 만해 한용운상(전두환보다는 만해 한용운으로 널리 알려져야하는 곳)

<한용운>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이다.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광무 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참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독립선언서낭독과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 후에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1973년 《한용운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용운 [韓龍雲]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백담사를 지나며

 

주차장까지 이동셔틀 4대를 기다린 후에 겨우 자리를 얻어 타고옴

 

못간 대청봉을 대신해 ...페이크

 

 

용아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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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5차 장흥 천관산

코로나로 억새도 모두 베어버린듯

오늘의 야생화 참취 며느리밥풀

 

산행기록

○ 일시 : 2020.9.13 09:48 ~ 16:48

○ 장소 : 장흥 천관산

○ 참석 : 4인(청량,떠날꺼야,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천관산 724m / 누적고도 617m

○ 거리 : 7.7km

○ 시간 : 7.0시간(휴식시간 2.8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봉황봉,천관산(연대봉),대장봉,보현봉,선인봉

○ 코스 : 방촌리 - 주차장 - 장천재 - 선인봉 - 금강굴 - 구정봉 - 환희대 - 억새군락 - 연대봉 - 봉황봉

- 주차장

○ 특이사항 : 코로나로 인한 조용한 산행

 

 

< 천관산(天冠山) >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천풍산(天風山), 지제산(支提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리산·월출산·내장산·내변산과 함께 호남지방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다.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과거에는 천관산 내에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천관사와 탑산사만 남아있다. 산 정상 주변에는 당암(堂巖)·고암(鼓巖)·사자암(獅子巖)·상적암(上積巖) 등의 기암괴석들이 이어져 있으며, 몇몇 봉우리에서는 다도해 경관을 볼 수 있다. 봄에는 진달래와 동백꽃이 붉게 물들고, 가을에는 산의 능선이 억새로 뒤덮혀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천관산 연대봉에는 고려 의종 때 세워진 봉수대가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때까지 주요한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산등성과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기암괴석 등의 화강암 지형경관, 억새군락 등의 식생경관, 정상부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다도해 경관 등 다양한 경관이 탁월하게 연출되어 경관적 가치를 지니며, 백제·고려와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대 행정구역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서 국가 치제를 지내거나 봉수를 설치해 국방의 요충지로 활용되어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1998년 10월 13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3월 8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천관산 [天冠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천관산 정상

 

 

천관산 산행지도

 

코로나 여파가 여기까지 (한산한 주차장)

 

장천재방면 산행입구

 

천관산 안내도

 

그늘숲을 걷는 묘미

 

비가 많이 왔는지 물소리와 함께 급조된 폭포들이

 

위백규 선생을 모신 장천재

<장천재>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1659년(효종 10)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1705년(숙종 31), 1724년(영조 23) 개수를 거쳐 1873년(고종 10)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

평면은 ㄷ자형이며 전면은 양쪽 날개 1칸씩을 누각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장대석으로 짜올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은 원주를 세웠는데 포작이 없는 주두와 창방, 장여를 올려 결구하였다. 지붕은 중앙 용마루 부분이 ㄷ자형 양익부와 높이를 동일하게 하고 전면에서는 팔작지붕의 합각이 보이며 배면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문은 중앙 3칸에만 설치하였는데 3칸 모두 2분합이다.

존재 위백규(魏伯珪:1727∼98)는 어려서 이곳에서 수학하고 후배를 양성하였다. 현판에 적힌 시문으로 보아 유림들이 시문을 교류하였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현재는 장흥위씨 방촌계파의 제각으로서 이용된다. 장천팔경이 있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출처] 장천재 [長川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장흥 장천재

 

참취가 귀여운 얼굴로

<참취>

산지의 밝은 숲속에서 높이 1~1.5 m 정도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비교적 곧게 서서 자라는데 윗부분에서 가지를 쳐서 그 끝에 꽃송이가 달린다. 흰색 꽃이 늦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에 핀다. 어린 잎이 크고 쓴맛이 적어 대표적인 묵나물 자료이다. 유사 식물로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와 옹굿나물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참취[rough aster] (식물학백과)

 

한여름의 꽃 며느리밥풀

 

미어켓바위(?)

 

 운무에 쌓인 능선들

 

조금은 지쳤을까요?

 

 

 

바위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는듯

 

금강굴

 

 금강굴

 

금강굴에서 한컷

 

돌상들이 운무속에서

 

석선 큰돌들이 배같아 붙혀진 이름

 

석선

 

사람얼굴 같기도 하고

 

세워진 암봉

 

석주를 깎아 구름속에 세워놓은것 같다고..

 

당번, 천주봉

 

 환히대

 

환희대 설명판

 

지나온 길

 

억새가 피기 시작합니다

<억새>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1∼2m로, 뿌리줄기는 모여나고 굵으며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줄 모양이며 길이 40∼70cm, 너비 1∼2cm이다.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가장자리는 까칠까칠하다. 맥은 여러 개인데, 가운데맥은 희고 굵다. 밑동은 긴 잎집으로 되어 있으며 털이 없거나 긴 털이 난다. 뒷면은 연한 녹색 또는 흰빛을 띠고 잎혀는 흰색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상태)이며 길이 1∼2mm이다.

꽃은 9월에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차례로 달리며 작은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꽃차례 길이는 10∼30cm이고 가운데축은 꽃차례 길이의 절반 정도이다. 길이 4.5∼6mm의 작은이삭은 노란빛을 띠며 바소 모양에 길고 짧은 자루로 된 것이 쌍으로 달린다. 밑동의 털은 연한 자줏빛을 띠고 길이 7∼12mm이다.

끝이 2갈래로 갈라진 호영(護穎:화본과 식물 꽃의 맨 밑을 받치고 있는 조각)에서 길이 8∼15mm의 까끄라기가 나온다. 내영(內穎:화본과 식물의 꽃을 감싸는 포 중 안쪽에 있는 것)은 길이 약 1.5mm로서 작으며 수술은 3개이다. 뿌리는 약으로 쓰고 줄기와 잎은 가축사료나 지붕 잇는 데 쓴다. 한국(전지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억새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억새길

 

 김작가님 작품활동

 

산정부 암릉길중 이런 평지도 

억새길은 이렇듯 단정한데 코로나로 억새를 베어버린듯 합니다

 

금밖에 나간것 같은데

 

억개 억새 억새 억새여인?

 

연대봉 정상부 

 

2023년에는 제30회 천관산 억새제가 열렸습니다

 

연대봉 설명판

 

거의 7년만에 천관산 정상에...

 

단체컷 

 

잎새공주님

 

떠날꺼야님

 

자전거탐 풍경님

 

연대봉 맑은날은 한라산도 보인다고

<연대봉>

천관산의 연대봉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왜적이 침입했음을 알리기 위해 봉홧불을 올렸던 곳이다. 고려 의종 3년(1149)에 처음 쌓아서 개축해오다가 왜적이 침입했을 때 장흥의 억불산(510미터) 및 병영(兵營)에 있는 수인산(561.3미터)과 교신을 했던 천관산의 봉수대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단석만 남았던 것을 1986년 3월에야 동서 7.9미터, 남북 6.6미터 그리고 높이 2.35미터로 쌓아올렸다.

[출처]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

 

하행길

 

운무에 신비스럽기까지

 

 산비쟁이?

 

거북바위?

 

정원암

 

정원암 설명판

 

 양근암

 

 코끼리바위 통과

 

 싱그러운 여섯씨

코끼리 코같은..

 

하산길

 

하산완료

 

오골계 수닭으로 보이는 장닭(누가 암닭을 건드리나 보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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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6차 보성 천봉산

가을날의 가을산행

오늘의 야생화 꽃무릇 단풍취 산박하

​산행기록

○ 일시 : 2020.9.19 10:19 ~ 16:58

○ 장소 : 보성 천봉산

○ 참석 : 5인(청량,자전거탄풍경,떠날꺼야,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천봉산 612m / 누적고도 553m

○ 거리 : 8.6km

○ 시간 : 6.6시간(휴식시간 2.6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천봉산,말봉산,까치산

○ 코스 : 대원사 - 까치봉 - 마당재 - 말봉산 - 천봉산 - 대원사

○ 특이사항 : 전형적인 가을산행

 

 

<천봉산>

높이 608m이다. 보성군 북부 산지를 대표하며 산세가 깊고 대원사 계곡을 비롯하여 계곡이 많다.

여수 순천사건 이후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특히 대원사 계곡은 전남도당이 무장부대를 최초로 편성했던 곳으로 대원사가 불에 타는 피해를 보았다.

대원사 계곡 입구에 보성군립 백민미술관이 있고, 주변에 서재필박사 기념공원과 고인돌공원·삼림욕장장 등이 있다.

백제 때 아도 화상이 절터를 잡기 직전 꿈에서 봉황의 보금자리를 닮은 곳을 발견하였다. 꿈에서 깨어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며 봉황의 보금자리를 찾다가 대원사터를 찾고는 산이름을 천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산행은 단양동 마을에서 시작해 천봉사를 지나 계곡으로 남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서쪽 능선을 타고 대원사로 하산한다.

[출처] 천봉산 [天鳳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022년 새로 세워진 천봉산 정상표지석

산행개념도

 

대원사 주차장은 한가롭기만 하고

 

산행시작

 

대원사 일주문

< 대원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503년(백제 무령왕 3)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라에서 활동하던 아도가 백제에 사찰을 세웠다는 점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창건 당시에는 죽원사(竹原寺)라 불렀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는 오교구산(五敎九山) 중 열반종의 8대 가람에 들었다고 하며, 1260년(고려 원종 1) 송광사 제5대 국사(國師) 천영(天英: 1215∼1286)이 사세를 크게 일으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때 산 이름도 중봉산(中鳳山)에서 천봉산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죽원사에서 대원사로 바꾸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하였으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757년(영조 33) 불에 탄 것을 1759년(영조 35) 현정이 중창하면서 건물 16동을 복원하였고, 거느린 암자만도 상원암(上院庵)과 호적암(虎蹟庵) 등 12개나 되었다. 1948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48년 여수 순천사건때 대부분 불에 탔다. 1990년 선원과 요사·일주문·주지실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출처] 대원사 [大原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산행안내도

 

대원사 가는길 배롱나무길 훗날 운치있는 길이 될것같다

 

꽃무릇(석산화)은 바위틈에 피어야 제격인듯

 

대원사 입구 목어가 인상적이네요

 

<김지장 성보박물관>

고배 경대에서 마주 보이는 대원사 사천왕루 2층 누각에는 신라 왕자 김지장 스님의 덕행을 알리고 선양하기 위해 김지장 성보박물관(2020.4)을 열었다.

지장보살의 최고성지를 개척한 김지장 스임은 신라 성덕대왕의 태자로 24세에 출가하여 75년 동안 금욕 수행하고 99세에 열반에 들어 육신보살이 되었다. 김지장스님은 중국에서 한류열풍의 원조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당숙종, 명숭정제, 청강희제, 건륭제)들이 구화산의 육신보살을 흠모하여 금인ㆍ장경ㆍ편액ㆍ토지ㆍ시주금 등을 공양올렸다. 시인과 고승들이 구화산을 찾아 그를 찬탄하였고 민간신앙으로 발전하여 부모님 수의에 '지장이생보인(地藏利生寶印)' 도장을 받아가는 풍습도 생겨났다.

[출처] 보성대원사 팜플렛

 

국가중요농업유산 고차수 군락지?

 

보성 녹차의 오래된 시배지라 합니다 (펌)

 

운주사와 비슷한 지장보살석탑

 

대원사의 깨어진 종

대원사가 아주 가난하던 시절(1974년)

주지스님이 고물상에 진 빚 2만원을 오랫동안 갚지 못하자 고물상 주인이 강압적으로 법당의 종을 여러조각으로 깨어서 빚대신 가지고 가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깨어진 종이라도 다시 찾아오게 될 기회가 있어서, 기본적 용접을 한 다음 송광사에서 보관해 오던 중 지난 1997년 다시 대원사로 돌아오게된 아픔이 있는 종이다

* 범종 제작시기 : 조선중기 1705년

* 무게 약 120kg

 

전형적인 육산

 

이제 능선부에 도착

 

까치봉에 도착

 

뭔가 고수느낌이 난다

 

<참취>

산이나 들의 초원에서 자란다. 높이 1∼1.5m로 윗부분에서 가지가 산방상으로 갈라진다. 뿌리잎은 자루가 길고 심장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굵은 톱니가 있으며 꽃필 때쯤 되면 없어진다. 줄기잎은 어긋나고 밑부분의 것은 뿌리잎과 비슷하며 잎자루에 날개가 있으며 거칠고 양면에 털이 있으며 톱니가 있다. 중앙부의 잎은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작아지고, 꽃이삭 밑의 잎은 타원형 또는 긴 달걀 모양이다. 잎에 무성아 비슷한 것이 생기는 것은 벌레집이다.

꽃은 8∼10월에 피고 흰색이며 두화는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포는 3줄로 배열하고 설상화(舌狀花)는 6∼8개이며 관상화(管狀花)는 노란색이다. 열매는 수과로 11월에 익는다. 어린순을 취나물이라고 하며 식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취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까치독사...

 

본나무가 죽고 옆에 새로난 가지가 장성해서...

 

말봉산 정상

 

말봉산 인증샷

 

떠날꺼야님 

 

잎새공주님

 

단체인증(천봉산)

 

단풍취

 

하산길

 

계곡은 평화로움 여유로움 그 자쳬

 

대원사 티벳박물관

대원사 티벳박물관은 티벳의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영적인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박물관은 대원사 주차장 위의 터를 닦아 티벳사원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이 15년 전부터 모은, 1000점이 넘는 티벳 미술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히말라야의 불교왕국 티벳. 그들이 이룩한 빛나는 예술세계와 뛰어난 정신문화, 그리고 죽음의 과학을 한국의 작은 티벳,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서 체험할 수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전시장과 티베트불교 지도자인 달라이라마 기념실, 사무실이 있다. 기념동상과 강연자료·사진집·비디오테이프 등을 통하여 티베트의 불교를 살펴볼 수 있으며, 티베트 불교탱화인 탕카, 보석으로 쓴 불경, 사물함 등의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티베트 신탁승 쿠텐라가 전해준 4과의 가섭불 사리가 48과로 증식되어 계속 자라나고 있는 신비한 모습을 참배할 수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석가모니불의 후손들이 만든 불상을 모신 법당이 있다. 천수관음상과 고행상 등이 있으며, 65인치 대형 VTR을 통해 티베트의 예술과 정신문화를 시청할 수도 있다.

지하 1층에는 중국에서 생불로 추앙받는 신라 왕족 출신 김지장의 기념관과 기획전시실·저승체험실이 꾸며져 있다. 기획전시실에는 티베트 불교책과 사진집 등을 갖춘 열람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옥상에는 티베트 명상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 산티데바가 있다.

[출처] 대원사 티벳박물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코로나 탓인지 물을 열지 않았다 보고싶었는데

 

 

약사여래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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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3차 장흥 가지산

태풍전야의 어수선한 분위기속 산행

오늘의 야생화 며느리밥풀 참취 큰고들빼기

​산행기록

○ 일시 : 2020.9.6 09:12 ~ 13:230

○ 장소 : 장흥 가지산

○ 참석 : 3인(떠날꺼야,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가지산 510m / 누적고도 395m

○ 거리 : 4.0km

○ 시간 : 4.1시간(휴식시간 1.5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가지산

○ 코스 : 보림사주차장 - 부도탑 - 전망대 - 망원석 - 가지산 - 소나무숲 - 비자나무숲 - 보림사

○ 특이사항 : 태풍전야의 어수선한 분위기

 

 

<가지산>

높이 510m이다. 산세가 좋고 돌을 깎아 세운 듯한 정상에 큰 바위 4개가 높이 솟아 있다. 꼭대기에 큰 니바우(바위 넷)가 높이 솟아 있어 니바우산이라고 부른다.

달마(達磨)의 선법(禪法)을 처음 전한 통일신라 헌덕왕(憲德王) 때 도의국사(道義國師)가 개산(開山)한 보림사(寶林寺)가 있다. 보림사는 9산문(九山門:선법의 절을 뜻함)의 하나이다. 고려 말기 9산문이 모두 그 기운을 다하여 퇴락하였는데, 이 산문의 태고화상(太古和尙)이 왕사(王師)로 1356년(공민왕 5)에 구산문을 통합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그 후 문풍(門風)을 전하였다고 한다. 사찰 내에는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남쪽으로 탐진강을 막아 장흥댐이 건설되어 있다.

[출처]가지산 [迦智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가지산 정상

 

가지산 산행개념도

 

 

가지산 비자림 산림안내도

 

보림사 부도탑앞 주차장(공터)에서 시작합니다

 

김삿갓의 시비 과보림사 김삿갓리이다녀간 기록이네요. 그리고 함평 용천사에도..

김삿갓이 보림사를 지나며 쓴 시비

 

다들 일생의 사연들을 간직한 부도탑

 

며느리밥풀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의 하소연이 들리는듯

<며느리밥풀 전설>

옛날에 마음씨 곱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와 성질이 못된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늘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시어머니는 호시탐탐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밥알을 입에 넣자, 시어머니는 이를 핑계 삼아 어른보다 먼저 밥을 먹었다며 며느리를 때려죽인다. 이후 며느리의 무덤가에 붉은 입술에 밥풀 두 알을 입에 문 듯한 모양의 꽃이 피어나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보며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다.

 

의외로 약수터가 많네요. 요즘은 식용하기가 좀 그렇지만서도

 

전망대에서 보는 보림사 모습

<가지산자락에 전해오는 전설>

보림사터는 원래 못이었는데, 신라의 명승 지눌이 절을 짓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이 곳 가지산에 도달해 보니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터였으나 불행히도 못이었다.

지눌은 이곳을 메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눈병을 앓게 한 뒤 그 치료방법으로 누구든지 눈에 병이 있는 사람은 장흥 가지산의 못에 돌 한덩이와 숯 한덩이를 던져 넣으면 눈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렇게 해서 못이 메워지자 이 안에 살고 있던 뱀·이무기들이 모두 나갔다. 그러나 청룡과 황룡만은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으므로 지눌이 지팡이로 쳐서 쫓아냈다. 못에서 쫓겨난 두 용은 현재의 용소에 이르러 서로 승천싸움을 벌이다가 백룡이 꼬리를 치는 바람에 산기슭이 도막나면서 패어 용소가 생겨났다.

결국 백룡은 승천했으나 청룡은 피를 흘리며 돌아다니다가 죽고 말았는데, 이때 넘은 고개가 현재의 피재이고 죽은 자리가 장평면 청룡리라 한다. 그리고 용소가 위치한 마을 이름도 용문동이라 하며, 늑룡(勒龍)이라는 마을이 그 이웃에 있고, 부산면과 장평면의 경계에는 용두봉이 있다.

 

 

마치 망원경과 같이 생긴 바위  망원석입니다 수인산 사자산 억불산들이 보인다는 조망처

유치호에 수몰되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이 선돌에 올라와 고향땅을 내려다보며 시름겨워하기도 했다고 해서 ‘망향석’이라 하고, 망원경처럼 생겨 ‘망원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근처에 은거하고 있던 스님들이 이 바위에 앉아서 산천을 조망하며 수도하기도 했다는 전하는 곳이다.

오른쪽 아래 쪽으로 탐진강과 산줄기가 용틀임을 하듯, 산태극 물태극의 조화를 이루는 풍광

 

망원석 설명판

 

아기바위가 탄생하는 모습입니다

진통이 시작된듯 합니다

 

오봉산 칼바위 느낌이 

 

 정상부

 

근 5년만에 다시찾은 가지산. 많은 기억이 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새로운 부분이 많다

 

어인 벼랑바위

 

 암릉길

 

정상부의 거대암봉

 

  

호남정맥은 이렇게 흐르고

  

가야할 곳도 암릉의 바위산들

 

소나무 산림욕장

 

소나무산림욕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휴양처

 

보림사주변 비자나무숲도 근사하게

1982년도 산림자원보호림으로 지정받은 보림사 비자림은 2009년 산림청, (사)생명의숲국민운동본부, 유한킴벌리가 주관하는 제10회 전국아름다운 숲으로 선정 되었다

보림사 천연비자림은 150~300년생의 비자나무 600여본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보림사 비자림은 물푸레와 노각나무가 상층림을 이루고 있고, 하층식생으로는 장흥의 전통차 ‘청태전’ 원료인 녹차와 비자나무가 숲을 형성하고 있어 생태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비자림에는 테르펜이란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피톤치드 같이 방향, 살균, 살충 효과가 뛰어나고 숲을 걸으면 자율신경을 자극해 신경안정과 뇌건강에 좋은 역할을 해 심신의 피로가 풀리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표고의 고장답게 곳곳에 버섯재배지가...

 

익모초도 고개를 내밀고 우릴 반겨주고

 

새단장하는 보림사의 모습

<보림사>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迦智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체징이 창건한 사찰.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중에서 제일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 사찰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가지산파의 법맥을 이어받은 체징(體澄)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체징은 이 산에 들어와 터를 잡고, 860년에 대찰을 창건하여 가지산파의 중심사찰로 발전시켰다.

그 뒤 끊임없는 중창과 중수를 거쳐 6·25전쟁 때 소실되기 전까지는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대찰이었다. 그러나 공비들이 소굴로 이용하였던 이 절에다 도주하기 전에 불을 놓아 대웅전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단지 천왕문(天王門)과 사천왕(四天王)·외호문(外護門)만 남았다.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여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 중층팔작(重層八作)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는데, 구조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수법이다. 이후 주민들은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출처] 보림사 [寶林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림사는 국가유산의 보고

국가지정 국가유산

01. 국보 제44 호 - 보림사 남, 북 삼층석탑 및 석등

02. 국보 제117 호 -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03. 보물 제155 호 - 보림사 동 승탑

04. 보물 제156 호 - 보림사 서 승탑 2기

05. 보물 제157 호 - 보림사 보조선사 탑

06. 보물 제158 호 - 보림사 보조선사 탑비

07. 보물 제745-9 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월인석보 권제 25

08. 보물 제772-3 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금강경삼가해 권제1

09. 보물 제1252 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권제9,권제10

10. 보물 제1254 호 - 보림사 목조 사천왕상 4상

 

중요문화재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63년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림사 동 승탑, 보림사 서 승탑, 보림사 보조선사탑,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남쪽 석탑이 높이 5.4m, 북쪽 석탑이 5.9m이며, 석등은 높이 3m로서 이들은 모두 870년(경문왕 10)에 건립되었다. 비로자나불좌상은 858년(헌안왕 2)에 김언경(金彦卿)이 자신의 봉급을 모아 조성한 불상이다.

[출처] 보림사 [寶林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 좌상(국보 제117호)

 비로자나불은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의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불교의 진리자체를 상징하며 법신불이라고 한다.

왼쪽 팔 뒤에 조상기(造像記)가 음각되어 있는데 "대중 12년 무주장사 부관 김수종(武州長沙副官金遂宗)이 왕에게 불상 만들기를 청했다"는 내용이다. 보조선사창성탑비문에도 이 불상의 조성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선제 14년 김언경(金彦卿)이 사재로서 시철(市鐵) 2,500근을 내어 노자나불을 조성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두 기록으로 보아 김수종과 김언경은 같은 인물이며, 지권인(智拳印)의 철불 존명(尊名)이 노자나불임을 알 수 있어 신라 하대 신앙사연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불상이다.

 

이 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에 비해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는데 몸에 비해 머리는 큰 편이고, 지권인을 결하고 있는 손은 지나치게 작은 반면에 발은 지나치게 크게 조각되어 있다. 얼굴은 경직된 인상으로 약간 치켜올라간 긴 눈과 각이 진 코, 두툼한 입술 등 표현이 강하다. 목에는 삼도가 두텁게 늘어져 비만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어깨는 빈약한 것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통견의 법의는 앞가슴이 V자형으로 깊게 벌어지고 속에 수평으로 입은 내의가 보인다. 옷주름은 평행융기선으로 정제되어 있지 않으나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양식을 살피는 데 있어서 조각 수법은 우수하지 못하지만 연대를 수반한 중요한 작품이다.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 지선의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보조선사(804∼880)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흥덕왕 2년(827)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 희강왕 2년(837)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문성왕 2년(840)에 귀국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선(禪)을 가르쳤다. 헌안왕 3년(859) 왕의 청으로 보림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그의 시호를 ‘보조선사’라 하고, 탑이름을 ‘창성’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머리를 하고 있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나운 모습이며, 등 뒤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전체를 덮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장식해 놓았다. 비몸돌에는 보조선사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웅대하게 조각하였고, 앞면 중앙에 ‘가지산보조선사비영’이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다.

통일신라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진 비로, 당시 조형수준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국가유산청)

 

수달이 서식한다는 습지엔 부처꽃이 애초롭게

<부처꽃>

부처꽃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의 습지에서 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양지 혹은 반음지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약 1m 정도 되고, 잎은 길이는 3~4㎝, 폭은 1㎝ 내외로 끝은 뾰족하며 마주난다. 꽃은 자홍색으로 정상부 잎겨드랑이에서 3~5개 정도가 달리며 줄기를 따라 올라가며 핀다. 열매는 9월경에 긴 타원형으로 달린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예전에 부처님께 바칠 것이 없어서 길가에 흔하게 피어있는 이 꽃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부처님께 바친 것이 ‘부처꽃’이란 이름의 유래라고 합니다

[출처] 부처꽃 (야생화도감(여름), 2010. 6. 28.)

 

큰고들빼기는 언제나 의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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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2차 자은 분계해변 응암산

마지막 여름날의 해변산책길
오늘의 야생화 무릇 단풍마 새며느리밥풀

 

​산행기록

○ 일시 : 2020.8.30. 10:00 ~ 12:00

○ 장소 : 신안 자은 분계해변

○ 참석 : 3인(떠날꺼애,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응암산 127 / 누적고도 200m추정

○ 거리 : 3.0km

○ 시간 : 2.0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코스 : 분계해변 - 응암산 - (회귀)

○ 배지 : (응암산)

○ 특이사항 : 바닷가 조망산행

 

 

< 분계해수욕장 >

자은도의 대표적 해수욕장으로 약 3km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과 백사장을 뒤덮고 있는 고운 모래와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울창한 송림, 해수욕장 바다 너머로 철새도래지로 알려진 칠팔도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한 이곳은 여름 피서지로 적격이다. 분계해수욕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닷가 모래언덕에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노송이다

 

 

<응암산(鷹岩山) / 매바위산>

응암산(127m)은 자은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매(罵)가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매바우산이라고도 한다.

 뱀이 전혀 없고 산봉우리 바위가 매처럼 사방을 잘 지켜주고 있어 주변에 복치형국(꿩이 엎드려 있는 모습)의 명당이 많다고 전해 내려오며 산신령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산의 돌을 아궁이 이맛돌로 사용하기 위하여 옮겨 놓으면 하룻밤 사이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 났다는 설이 있다.

분계마을 매바위산은 이 지방에서 명산 중의 명산으로 소문났다. 그래서 명당자리가 있을 것으로 알고 각 지방의 풍수들이 명당을 찾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또한 소원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부정한 사람이 기원을 하면 갑자기 불이 나서 화상을 입고 병신이 된다는 설도 있다. 또 깨끗하고 신성한 명산이므로 뱀이 전혀 없고 산봉의 바위가 날카로운 매의 모습으로 늘 사방을 지켜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은도 [慈恩島] - 아홉 개의 백사장, 너른 들판이 펼쳐진 자애로운 섬 

 

응암산 정상부와 정상수

 

자은도 지도

 

분계주차장도 새단장을 하고서

 

소나무숲이 예술

 

천년의 숲입니다

 

분계해변 해사랑길

 

분계해수욕장

 

천년의 숲을 지나며

 

그냥 예술

 

여인송앞엔 인증샷을 위해 줄을서고

 

여인송의 전설

 

매를 닮았다는 응암산 산행길입니다

 

무릇이 이산의 주인행세를 하고

<무릇>

약간 습기가 있는 들판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20∼50cm이다. 땅속에 길이 2∼3cm의 달걀모양의 둥근 형태의 비늘줄기가 있고, 잎은 봄과 가을에 2개씩 나온다. 꽃은 7∼9월에 피고 길이 20∼50cm의 꽃줄기가 나와 끝에 길이 4∼7cm의 총상꽃차례가 발달한다.

꽃은 연한 홍자색이고 화피갈래조각과 수술은 각각 6개이며 암술은 1개이다. 씨방은 타원형이고 잔털이 3줄로 돋아 있다. 열매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길이 4mm이다. 비늘줄기와 어린 잎을 엿처럼 오랫동안 조려서 먹으며, 구황식물(救荒植物)의 하나이다. 뿌리를 구충제로 사용한다. 한국, 아시아 동북부의 온대에서 아열대까지 널리 분포한다. 백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무릇(for. alba)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릇 [Chinese squill]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아기자기한 산행길

 

반대편 해변은 가거도 필이..

 

단풍마도 얼마남지 않은 여름날을 즐기고

<단풍마>

산과 들에서 자란다. 굵은 뿌리줄기는 옆으로 벋고, 줄기는 다소 연하며 많은 가지가 갈라지고 물체를 감으면서 길게 뻗는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가 6∼12cm, 폭이 4∼10cm이며 밑 부분이 심장 모양이고 손바닥 모양으로 5∼9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 중 가운데 것은 좁은 달걀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며, 옆에 있는 것은 끝이 둥글거나 둔하다. 잎자루는 길고 밑 부분에 1쌍의 작은 돌기가 있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고 6∼7월에 피며 잎겨드랑이에 길이 5∼15cm의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작은 꽃들이 많이 달린다. 수꽃이삭은 때때로 갈라지고 수꽃의 꽃대는 짧다. 수꽃과 암꽃 모두 작은꽃자루가 없고, 수꽃의 화피조각은 바소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거나 둔하며 수술은 6개이다. 암꽃의 화피조각은 긴 타원 모양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길이가 20∼22mm, 폭이 19∼27mm이며 3개의 날개가 있다. 종자는 타원 모양 또는 넓은 타원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날개가 있다. 한방에서 뿌리줄기를 천산룡(穿山龍)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어혈이 엉기어 뭉친 증세에 술에 담가서 복용하고, 어혈 때문에 생긴 관상 동맥 장애에 사용하며, 폐의 열 때문에 생긴 기침과 천식을 가라앉히고, 피의 열을 내리므로 종기와 피부가 헐어 생긴 발진에 사용한다. 한국(제주·경남·충남·강원·경기·평북)·일본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단풍마 [丹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분계해변옆의 응암산

 

바로앞 바닷가 풍경

 

아마도 비금 도초 방면이 아닌지

 

분계해변의 모습

 

풍력발전소도 오늘은 쉬는중

 

뭉게구름이 일어나는 중

 

송이풀도 이렇게

 

되돌아 오는길 천년의숲길

 

여인송도 지나고

 

 


시기는 언제 인지 알수 없는 옛날 하고 아주 오래된 그 옛날....

분계마을에 가난하지만 고기잡이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다.

어느날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고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큰 풍랑을 만나 돌아 오질 않았다.

​마누라는 출근하는 남편하고 부부쌈을 한것을 후회하며 이곳 솔등에 올라 우각도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허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날 마누라 꿈에 소나무를 물구나무로 서서 보니 남편이 타고 나간 배가 돌아 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날부터 마누라는 분계의 제일 큰 소나무에 올라 남편의 배가 돌아 오는 환상을 보곤 하였다.

어느 겨울....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소나무에서 거꾸로 떨어져 동사하였다.

그후 돌아온 남편이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여 소나무 아래 묻어주자 나무로 거꾸로 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닮은 여인송으로 변하여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고....

 

 

여름날 아이들에겐 물놀이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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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1차 담양 금성산성

흐린날의 우중산행

오늘의 야생화 새며느리밥풀 꿩의다리 백양상사화

​산행기록

○ 일시 : 2020.8.29 09:56 ~ 15:12

○ 장소 : 담양 산성산(금성산성)

○ 참석 : 3인(떠날꺼야,잎새공주,산중애)

○ 높이 : 산성산 603m / 누적고도 441m

○ 거리 : 8.3km

○ 시간 : 3.3시간(휴식시간 1.9시간) / 이동시간 1시간

○ 배지 : 대나무생태공원1, 대나무생태공원3, 산성산, 운대봉, 시루봉

○ 코스 : 주차장 - 남문 - 충용문 - 동문 - 북바위 - 운대봉 - 산성산(연대봉) - 쉼터 - 북문 - 보국사터

- 남문 - 주차장

○ 특이사항 : 우중산행

 

 

 

< 산성산(山城山) > (고도:603m)

담양군의 금성면 금성리 · 용면 산성리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호남정맥 용추봉에서 남쪽으로 향한 산성산 능선이 광덕산을 거쳐 오르면서 평탄면을 이루는 산지이다. 능선을 따라 포곡식으로 금성산성이 축성되어 있고, 서쪽은 담양호가 보인다. 『고려사절요』에 "1380년(고려 우왕 6)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성산성은 시루봉을 정점으로 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 동문-운대봉(최고봉)-연대봉-북문-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이다. 1610년 개축되고, 1622년 내성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케 했다. 1653년 내성을 수축하였다.

1894년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격전장이 되었다.

[출처] 산성산[山城山]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산성산 정상

 

금성산성 지도

산성 개념도

 

역사문화 명소

 

흐린날씨와 코로나 정국에 한산한 주차장

 

 

사진속 가을날의 산성모습

 

맹종죽이 숲을 이루고

<죽순대>

강남죽(江南竹)·맹종죽(孟宗竹)이라고도 한다. 중국산이며 한국에서는 남부지방에서 재배한다. 높이 10∼20m, 지름 20cm에 달한다. 처음에는 털이 있으며 녹색에서 황록색으로 된다. 마디에는 고리가 1개씩이고 가지에는 2∼3개씩이다. 죽순은 5월에 나오고 포는 적갈색이며 검은 갈색 반점과 털이 밀생한다. 잎은 작은가지 끝에 3∼8개씩 달리고 바소꼴이며 가장자리의 잔톱니가 빨리 없어지고 어깨털도 빨리 떨어진다.

꽃은 원추꽃차례에 달리고 포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며 작은이삭에 양성화 1개와 단성화 2개가 들어 있다. 포영(苞潁:작은이삭 밑에 난 한 쌍의 포)은 바소꼴이고 내영(內潁:화본과 식물의 꽃을 감싸는 포 중 안쪽에 있는 것)

은 3개이며 암술머리는 3개로 갈라진다. 씨방은 달걀모양이다. 죽순을 식용하고 있으므로 죽순대라고 한다. 크게 자라지만 재질이 무르기 때문에 세공용으로 쓰지 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죽순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매미는 떠나는 여름을 아쉬워 하고 있다

 

오름길 바위와 소나무로 된 길목. 산성의 느낌을 슬슬..

 

동학농민혁명군 격전지

 

오솔길같은 탐방로

 

한여름과 빗속에서도 그 신비한 빛을 발하는 닭의장풀 

 

바위위에 세워진 보국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철옹성 입구의 보국문

금성산성은 호남창의회맹소 전투지입니다.

1908년 호남창의회맹소의 본진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투를 치른 곳으로 호남창의회맹소는 호남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 부대를 규합하여 결성한 연합의병 지휘부로 기삼연이 대장이었습니다.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 본진은 1908년 1월 혹한을 피하고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금성산성에 머물렀답니다. 이때 의병부대의 동향을 탐비한 일제 군경의 습격으로 의병30여 명이 전사하고 다수가 부상당하였습니다.

기삼연은 인근에 몸을 숨겼으나 일본군의 추격으로 붙잡혔고 의병들의 구출 작전을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총살, 순국하였습니다. 금성산성은 임진왜란때도 의병의 활돌 거점이었으며,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 당시에도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산성안에 들어섭니다

 

여기는 충용문 

 

호남창의 회맹소 전투지

 

또다른 모양은 돌탑은 산객을 반기고

 

백양상사화 일부로 심은듯 하다

 

자연계단

 

동자암

 

성벽은 허물어지고

 

동문터입니다 

 

우중의 영아자

 

등골나물도 피어나고

 

뾰족하게 솟은 북바위

 

백성들의 수고로움으로 지어졌을 금성산성

<금성산성>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金城山)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 입보용으로 사용된 성곽. 산성. 사적.

산성산으로도 불리는 금성산 줄기의 해발 350∼600m 능선에 쌓은 산성이다. 길이가 3km에 가까운 큰 규모로, 전라남도 장성의 입암산성, 전라북도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처산성(三處山城)으로 불렸다. 1380년(우왕 6) 9월 왜구가 남원성을 공격하고 운봉현을 약탈한 뒤, “광주의 금성(金城)에서 전마(戰馬)를 배불리고서 북상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금성’은 금성산성으로 보인다.

 

산성 축조에 대해서는 1410년(태종 10), 1597년(선조 30), 1610년(광해 2), 1653년(효종 4)에 수축했다는 기록이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1,804척이며, 성 안에 9곳의 샘과 제사처인 신사(神祠)가 있다고 하였다. 처음 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혹은 신라말 고려초라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조선 말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산성의 규모가 큰 것으로 보아, 안으로 들어와 보호를 받는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 사용되었을 듯하다. 1237년(고종 34)에 ‘백제도원수(百濟都元帥)’이라고 하면서 봉기한 이연년(李延年)이 담양군과 원율현(原栗縣)을 거점으로 세력화하고서, 산 속에서 무리를 불러모아 촌락을 노략질하였다. 당시 이들은 원율현에 위치한 금성산성을 활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이전인 1256년(고종 43)에는 몽골의 차라대 군대가 담양에 주둔하였는데, 이 때 금성산성은 담양, 광주 등 주변 지역민의 입보산성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외성과 내성의 2중성으로 되어 있는데, 외성의 둘레는 2㎞, 내성의 둘레는 700m이다. 성곽의 높이는 3m 이내이며, 성벽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 이외에 특이하게도 주변에서 산출한 점판암을 사용하였다. 문터는 본성에 동서남북 4곳이 있고, 내성 2곳, 외성 1곳 등 모두 7곳이 있다. 4대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었던 것은 서문인데, 서문과 동문에는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서문 남쪽에는 성벽을 3m 정도 터내서 만든 대형 수구(水口)가 있다. 건물터는 모두 16곳이 확인되었다.

[출처] 금성산성 [金城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산성길 능선

 

층꽃도 한창

<층꽃나무>

줄기가 무더기로 나와서 높이 30∼60cm이고 작은가지에 털이 많으며 흰빛이 돈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다. 양면에 털이 많고 가장자리에 5~10개의 굵은 톱니가 있다. 꽃은 여름에 피고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꽃이삭이 잎겨드랑이에 많이 모여 달리면서 층층이지므로 층꽃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 화관은 5개로 깊게 갈라지며 제일 큰 갈래조각의 가장자리는 실같이 갈라진다.

꽃은 연한 자줏빛이지만 연한 분홍색과 흰빛을 띠기도 한다. 암술대는 2개로 갈라지고 4개의 수술 중 2개는 길며 모두 꽃 밖으로 길게 나온다. 열매는 꽃받침 속에 들어 있고 중앙에 능선이 있으며 검은색으로 익고 종자에는 날개가 있다. 한국(전남 ·경남) ·일본 ·중국 및 타이완의 난대에서 아열대에 분포한다.

[출처} 층꽃나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가야할 산성산 방면 

 

오랜만에 산성산에 서보다

 

 

인증컷

 

인증컷

 

멀리 무등산방면

 

꿩의 다리

 

북문에 도착

 

우중에 쑥부쟁이도 활짝피어 있네요 

 

동자들이 살았을 동자암

2004년동자암 움막에 또아리를 틀고 전통무예를 연마하며 지내던 다섯 스님[청풍(스승), 보리(아내),황룡(큰아들),청룡(둘째아들),구봉(막내딸)]은 2007년 10월 둥지를 떠나 영암 활성산 자락에 기거하다 2008년 5월 전기도 수도도 없는 이 곳 동자암으로 돌아왔다.(이주 사유는 무허가 움막으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 산성 보호 등의 이유였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여기서도 촬영했다고 한다

2014년 청풍스님은 산성생활 10년만에 입적했다. 청산스님은 고혈압과 폐 손상, 신부전증 등으로 투병하면서도 수련활동을 통해 자연치료를 고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인 보리(비구니)스님이 부모없는 세아이를 거두어 자식처럼 키웠다고 한다

대학생에 군대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생전의 청풍스님과 가족들

 

산성내를 가로지르는 길

 

연리지라는데...

 

사랑의 연리목

 

산성안길

 

갈림길 / 사람이 살았음직한 대나무들과 집터자리

 

남문에 도착

 

담양호 너머 추월산

 

하산길

하트모양의 사랑바위

 

연동사

 

연동사 동굴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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